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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제주 박물관 투어] 국립제주박물관

by 휴식같은 친구 2023.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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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박물관 투어] 국립제주박물관

 

 

제주여행 첫날부터 내리던 비는 5일 동안 계속됐습니다.

예상치 못한 장기간의 우천으로 실내관광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덕분에 제주도에 있는 박물관 투어를 제대로 즐기는 여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튿날 오전에 가정 먼저 박물관투어를 시작한 곳은 국립제주박물관입니다.

국립제주박물관은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국립박물관으로 2001년에 개관한 곳입니다.

특히 국립제주박물관은 섬문화를 특성화 주제로 해양문화와 제주지역사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박물관이기도 합니다,.

 

비오는 날이라 여행객들의 박물관 방문도 많았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상당히 많이 다녀가는 곳인데요.

국립제주박물관 관람안내 및 전시 내용을 담았습니다.

 

국립제주박물관은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과 별도봉 입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립제주박물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

휴관일(휴무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과 추석연휴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국립제주박물관 전시관은 1층으로만 이어져 있고, 상설전시실의 선사시대 제주부터 기증문화재 전시까지 관람동선에 따라 관람하면 됩니다.

그 외 기획전시실과 어린이박물관이 별도로 있습니다.

 

국립제주박물관 1층 로비 모습

 

상설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

 

전시실 입구에는 학생들이 박물관 견학에 대한 리포트를 쓰고 있는지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네요. ㅎㅎ

학창시절엔 박물관이 그저 따분하고 싱거운 여행일 텐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기특~

 

안쪽으로 이동하면 안내데스크와 뮤지엄샵이 있습니다.

 

국립제주박물관의 천정 모습

제주도 지도가 그려진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섬, 제주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제주도

 

세계연표와 제주도 연표

1만 5천년 전까지만 해도 대륙의 끝에 있던 제주도는 1만년 전에 섬이 되었습니다.

 

빙하기, 섬 이전의 제주

 

제주도의 시작은 구석기시대, 180만년전부터 10만년 전까지 여러차례에 걸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애월읍 빌레못동굴에서는 대륙 북반구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갈색곰, 사슴, 노루 등의 뼈가 발견되어  당시에 사람과 동물이 육로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만 5천년 전후로 한반도에 구석기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왔고 토양쇄기, 뗀석기, 동물뼈 등이 확인됐습니다.

 

한반도에서 제주도로 이동하여 살았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동굴에 살면서 사냥과 채집으로 생활했습니다.

 

제주 섬과 신석기

 

1만여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바다의 수면이 높아지면서 제주는 육지와 분리된 섬이 되었습니다.

신석기 문화를 보여주는 유적은 한경면 고산리에서 확인이 되었는데,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신석기기대 유적으로 알려졌습니다.

 

배를 타고 나아가 한반도 남해안 지역과 교류하였고 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신석기 문화가 제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사냥과 채집, 어로활동을 하며 살았습니다.

 

한반도 청동기문화의 전래

 

제주도 청동기문화 역시 한반도 중남부 지역과의 지속적인 교류로 형성하여 발전했습니다.

대정읍 상모리 유적에서는 골아가리무늬와 구멍무늬가 복합적으로 표현된 청동기시대 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둥근 집터 중앙에 기둥을 세워 움집을 짓고 바닥이 좁고 몸체가 둥근 토기를 사용하며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바닷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마을은 규모가 커졌습니다.

삼양동과 용담동, 외도동 등에서는 100기 이상의 집터가 있는 마을이 확인됐습니다.

청동 검이나 옥 정신구와 같이 외부에서 수입된 귀한 물건을 소유할 만한 권력과 재력을 가진 지배자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독무덤

사람의 주검이나 뼈를 묻는 토기 항아리를 독널이라고 하며, 독널을 사용한 무덤을 독무덤이라고 합니다.

삼양동에서 발견된 독무덤은 삼양동식토기 2개를 붙여 관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독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독널을 넣은 후 가장자리엔 돌을 채우고 흙을 덮어서 만들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의 크기에 비하면 매우 작아 보여 작은 키임을 알 수 있었네요.

 

선사시대부터 탐라시대까지의 제주 역사 연표

 

대외교류

기원 전후 한반도 남부지역은 마한 54국, 진한 12국, 변한 12국 등 수많은 작은 나라들이 있던 시기.

제주는 중국과 왜 등 주변 지역과 교류를 활발하게 했는데 건입동 산지항에서 출토된 오수전, 화천, 대천오십, 화포, 본뜬거울, 칼 꾸미개 등과 구좌읍 종달리에서 출토된 한국식동검, 삼양동의 청동검, 옥혼 등이 대외교류의 증거들이라고 합니다.

 

뛰어난 항해술을 가졌던 제주 사람들은 백제, 일본, 중국 등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한반도 육지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시기에 제주에는 섬을 뜻하는 '탐'과 나라를 뜻하는 '라'를 합친 이름인 탐라국이 세워졌습니다.

탐라라는 이름은 476년(백제 문주왕 2) 탐라에서 백제에 조공했다는 기록으로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합니다.

 

 

작은 지배세력이 합쳐져 큰 집단을 이룬 것으로 2세기 전후에는 제주 전지역에 동일한 양식의 토기와 지배자의 무덤이 등장했습니다.

제주 용담동 무덤유적에서 나온 철제 무기와 구슬 등 제주에서 나지 않는 위세품은 강력한 탐라 지배층이 존재했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탐라의 토기들, 탐라 전기를 대표하는 곽지리식 토기

애월읍 곽지리 조개무지 유적은 입이 넓은 항아리 모양의 토기를 곽지리식 토기라고 부르며, 안덕면 화순리, 예래동, 외도동, 애월읍 하귀리 등에서도 같은 형식의 토기가 사용됨을 알 수 있습니다.

 

 

탐라 후기를 대표되는 토기는 고내리식토기입니다.

애월읍 고내리 유적에서 출토된 원통형의 깊은 바리 모양 토기를 고내리식토기라 하며 납작한 바닥과 이어지는 몸통에서 아가리가 좁아지는 바리 모양으로 물레를 사용하는 새로운 기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제주의 다양한 이름들

 

주호 - 삼국지 위서 동이전

탐라국 - 삼국사기, 백제본기(476년)

탐모라  - 삼국사기, 백제본기(478년)

섭라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504)

탁라, 탁라군 - 고려사, 지리지(1105)

탐라, 제주 - 고려사, 지리지(1295)

동영주 - 신증공국여지승람(1530)

제주목 - 신증공국여지승람(1530)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제주 역사 연표

 

제주의 불교문화

 

제주에서 불교가 융성한 것은 고려시대부터입니다.

1034년(덕종 3) ㅅ도 개경에서 열린 팔관회에 탐라의 사신이 참석했고, 1057년(문종 11)에 육지 사찰창건에 탐라사람들이 동원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제주의 대표적인 절은 법화사, 수정사, 원당사, 존지암 등이 있습니다.

법화서 터에서는 고려청자와 다양한 기와, 중국 도자기 등이 발견되었고, 원당사 터 5층석탑, 수정사 터 석탑 부재, 존지암 터 출토품 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대몽항쟁과 제주

 

제주역사에서 대몽항쟁을 빼놓을 수는 없겠죠?

고려는 1231년(고종 18)에 몽골군이 침입하자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하고 몽고에 저항했으나 무신정권이 붕괴되면서 1270년 몽골에 굴복하고 개경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에 반기를 든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몽골에 대항했고, 전세가 기울자 제주 이동하여 항쟁을 이어갔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삼별초와 뜻을 같이하여 대몽항쟁에 적극적을 가담하기도 했으나 결국 고려정부와 몽골 연합군에 패하면서 대몽항쟁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삼별초와 향파두리성

 

대몽항쟁을 하면서 향파두리에 성을 쌓고 항전했으나 1273년(원종 14) 결국 여몽연합군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원은 일본 원정에 대비하여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다루가치를 파견하여 감독하였습니다.

최근 발굴조사로 향파두리성 내외성 구조와 축성방식을 알게 되었고, 성 안에서 20여기의 건물터, 답옷, 청자, 청동그릇, 기와류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향파두리성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미늘 갑옷

 

제주의 3읍

 

조선은 지방통치를 위해 전국 8도에 관찰사를 두고, 그 아래 330여 개의 부, 목, 군, 현에는 수령을 내려 보냈습니다.

1393년(태조 2) 여의손이 첫 번째 제주목사로 부임했고, 1416년(태종 16)에는 제주목사 오식이 남쪽의 토착세력을 통제하며 한라산 북쪽에만 관아가 있는 불편을 덜기 위해 현감 2명을 파견해 달라고 건의를 합니다.

이에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의 3읍 체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주목 관아터 발굴

 

제주의 중심, 관덕정과 제주목관아

 

제주목사

제주목 업무뿐만 아니라 전라도 관찰사를 대신하여 대정현과 정의현을 감독하는 등 다른 고을의 수령보다 권한이 컸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제주목사는 총 284명, 평균 재임기간은 1년 8개월로 짧은 편이었습니다.

그중 이형상(1653~1733)은 1702년 부임하여 1년여 동안 재임하면서 탐라순력도를 제작했고, 이규원(1833~1901)은 1891년부터 3년간 재임하면서 국방을 정비하고 민심을 안정시키고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등 바른 어진 정치를 했다고 합니다.

 

제주인의 과거와 출사

제주인의 과거는 행정구역상 전라도에서 치러졌는데, 바다 건너가는 지리적 특수성을 감안하여 중앙에서 별견어사를 내려보내 별시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제주출신 문과 급제자수는 60명이 채 안되었다고 합니다.

 

제주의 교육기관

중앙정부는 제주 유학교육을 위한 향교를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세 곳에 설치했습니다.

 

 

국립제주박물관을 관람하고 제주교육박물관으로 향했는데요.

제주교육박물관에서는 옛날 교육의 향수와 함께 제주도 과거, 학교 변천에 관한 다양한 전시가 있어 볼만했습니다.

 

[제주 박물관 투어] 제주 교육박물관

 

이방인의 눈에 비친 제주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은 항해 중 제주에 표류했다가 조선에 13년간 억류되었습니다.

본국으로 돌아가 하멜표류기를 남겼는데 이는 유럽에 조선을 소개한 최초의 기록입니다.

 

제주의 인물

 

통계로 보는 제주

제주의 인구변화

 

제주에 유배온 사람들

 

제주의 생활과 신앙

섬이라는 특징으로 제주는 제주만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신앙이 만들어졌습니다.

 

제주섬 사람들

화산섬 제주에서의 농사는 어려워 바다가 생활터전이 되었던 제주,

바다에서 나온 미역, 전복 등이 특산물이자 교역품이었습니다.

한라산 주변에서 기른 과 함께 진상품이었습니다.

 

상설전시장을 나와 어린이박물관으로 이동합니다.

 

국립제주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체험과 놀이로 제주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어린이 전시공간입니다.

 

산과 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제주도 사람들의 삶을 경험할 수 있어 아이들이 무척 신나는 공간이네요.

 

지하에는 실감영상실이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로 만든 다양한 몰입형 실감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09:30~17:30까지 매 시간 정각, 15분, 30분, 45분에 순차적으로 상영됩니다.

 

실감영상실에서 펼쳐지는 영상

 

1) 표해, 바다 너머의 꿈(12분)

2) 제주 영상시, 심원의 영상(11분)

3) 영주십경(10분)

 

화려한 영상의 매력에 빠질 수 있어 볼만하더라고요.

 

실감영상실 모습

커다란 내부 공간 자체가 디스플레이가 되어 있습니다.

 

요즘 디지털 미디어아트가 대세이던데 유료관람만큼 멋지게 상영됩니다.

 

영상으로 관람해 보세요.

 

 

옥상에 올라가면 사라봉 등의 전망을 볼 수 있는데 비가 와서 잠깐만 올라갔다 내려왔습니다.

 

사라봉과 별도봉 전망

 

 

국립제주박물관은 섬, 제주의 역사와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곳입니다.

제주도를 여행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니 한 번은 들러서 구경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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