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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한양에서 가장 먼 조선 6대왕 단종의 능, 영월 장릉

by 휴식같은 친구 2023.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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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한양에서 가장 먼 조선 6대 왕 단종의 능, 영월 장릉

 

영월군은 조선 6대 왕인 단종의 유배지로 많이 알려진 지역인데요.

단종이 유배했던 청령포가 있고, 죽음을 맞이했던 영월부 관아 객사인 관풍헌, 그가 묻힌 영월 장릉이 있는 곳입니다.

청령포를 관람하고 영월 장릉으로 이동했습니다.

 

단종 유배지, 영월 청령포 (입장료 및 관음송과 망향탑)

 

영월 장릉은 조선 제6대 왕이었던 비운의 왕, 단종(1441~1455, 재위 1452~1455)의 능으로 1970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40기의 조선왕릉과 함께 등재된 곳인데요.

유배지에서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왕(당시 서인)이라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른 조선왕릉과 달리 단종복위운동과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던 충신들의 제향공간을 갖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조선 6대 왕, 단종의 조선왕릉인 영월 장릉 구경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월 장릉 및 단종역사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30분전 입장마감)

휴무일(휴관일) 연중 무휴

입장료(관람료) 어른 2,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경로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관람 소요시간 30분 ~ 50분

 

 

조선왕릉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로 확인해 보세요.

 

조선왕릉 총정리 (분포, 구성, 관람안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이야기

 

장릉 입구로 들어서면 너른 마당이 나오고, 그 앞에 단종역사관과 재실이 있고, 우측으로 올라가면 장릉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먼저, 단종역사관에서 단종의 즉위와 선위, 단종 복위운동, 유배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단종의 생애를 이해하고 이동하면 됩니다.

 

영월의 상징이 된 조선 6대왕, 영월 장릉 단종역사관

 

단종의 능인 장릉 재실

 

장릉으로 올라가는 입구

 

영월 장릉 입구에 있는 박충원 낙촌비각

박충원은 중종 26년(1531) 문과에 급제했고, 사후에 문경공이란 시호를 받은 충신인데요.

 

중종 11년(1516) 노산군의 묘인 노산묘를 찾으라는 어명에 따라 찾아 제사를 지냈고, 그 후 방치되다가 중종 36년(1541) 영월군수로 부임한 박충원의 현몽에 봉축하고 전물을 갖추고 제문을 지어 지체(제사)하였다고 합니다.

 

장릉 가는 길

 

비가 내리는 왕릉 가는 길의 숲길은 운치 있습니다.

 

5분 정도 걸어가면 단종이 누워있는 장릉이 보입니다.


1452년 아버지 문종이 지병인 등창의 재발과 악화로 사망하자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숙부인 세조의 강압으로 3년 뒤에 왕위에서 물러나 상왕이 되었습니다.

 

 

세조 2년(1456) 6월 성삼문, 류성원, 이개, 유응부, 박팽년 등 집현전 학사들을 중심(사육신)으로 단종을 복위시킬 계획을 세웠으나 김질의 밀고로 실패하고 이듬해 노산군으로 신분이 낮아지고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습니다.

 

언덕 아래에 자리한 영월 장릉 정자각

 

청령포에서 2개월 남짓의 유배생활은 홍수로 인해 관풍헌으로 옮겼습니다.

 

영월부 관아 객사, 관풍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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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경상도 순흥에 유배로 가 있던 세조의 동생이자 단종의 6번째 숙부인 금성대군이 1457년(세조 3) 7월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하려다 발각되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결국 노산군에게는 사약이 내려졌고, 단종은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결했으니 단종의 나이 17살이었습니다.

 

단종의 시신이 영월 동강에 버려진 것을 영월 호장 엄흥도가 거두어 선산인 현 위치에 암매장했습니다.

 

1516년(중종 11) 폐허가 된 단종 묘를 찾아 봉분을 갖추고,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의 현몽에 따라 제사를 지냈습니다.

 

영월 장릉, 단종의 조선왕릉

 

1581년(선조 14) 성석과 표석, 장명등, 만주석을 세웠고, 1681년(숙종 7)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 신위를 종묘에 모심과 동시에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으로 했습니다.

 

능침은 추존왕릉의 예에 따라 봉분 주위에 석양과 석호 1쌍씩, 봉분 앞에는 석상, 혼유석, 장명등을, 봉분 양쪽에는 망주석 2기를 세웠습니다.

그 아래 단에는 문석인 2기와 석사 1쌍을 세웠고, 무석인은 생략한 상태입니다.

 

조선왕릉에 있는 망주석에는 세호(보통 동물의 형상)를 조각하는데, 이곳 장릉 망주석에는 세호가 없는 유일한 망주석이라고 합니다.

 

제를 올레는 정자각은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있습니다.

 

장릉의 봉분에서 보듯 간소화한 조선왕릉으로 꾸며진 반면, 다른 조선왕릉과는 다르게 단종에게 충절을 바친 신하들의 위판을 배향한 배식단사와 충신단, 정려각 등이 있습니다.

 

영월 장릉 정자각 진입로에 있는 배식단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위, 조사위, 환자군노위, 여인위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단종제향과 함께 제사를 지내는 제단입니다.

 

장판옥

 

정보 15년(1791)에 건립한 것으로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위 32위, 조사위 186인, 환자군노 44인, 여인위 6인을 합하여 268인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입니다.

 

장릉 홍살문

 

장릉의 신로와 어로는 'ㅡ'자로 가는 것이 아니라  'ㄱ'자로 꺾여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영월 장릉은 처음에 왕릉으로 조성된 곳이 아니다 보니 다른 조선왕릉과는 차이가 있게 된 것입니다.

 

오래된 나무 한그루가 단종의 한이라도 달래주고 있었을까요?

 

이곳은 영천

 

장릉 서쪽에 있는 우물로 정조 15년(1791)에 어명으로 영월부사 박기정이 수축하여 한식 때 제정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평상시엔 조금씩 샘물이 솟았으나 매년 한식 때 제향을 지낼 때에는 물이 많이 용출했다고 합니다.

 

영천 우물의 깊이는 1.5m, 하부는 화강암 돌담으로 둥글게 쌓여있고, 상부는 정방형 모습입니다.

 

제향을 올리는 정자각

 

정자각에서 봤을 때 우측에 있는 건물은 제향을 올리는 음식을 준비하는 수라간이 있고, 좌측에는 능과 경내를 관리하는 수복이 머무는 수복방이 있습니다.

 

영월 장릉 정자각

 

 

능 제향을 올리는 곳으로 지붕 위에서 봤을 때 정(丁) 자 모양이라고 해서 정자각이라 부르는 곳입니다.

제향을 지내는 정청과 정청 앞 월대 부분인 배위청으로 구성됩니다.

이 정자각은 숙종 25년(1699)에 지어진 것입니다.

 

정자각 내부 모습 

정자각에서 바라본 신로와 어로

 

단종비각

영조 9년(1733)에 건립된 것으로 단종대왕의 생애가 기록된 비석입니다.

 

장릉과 정자각을 모두 구경하고 출구 방향으로 나갑니다.

비가 내리는 장릉 풍경이 운치 있습니다.

 

엄흥도 정여각

충신 엄흥도의 충절을 알리기 위해 영조 2년(1726)에 세운 것입니다.

 

 

엄흥도는 영월호장으로 있을 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1457년 10월 24일 관풍헌에서 승하하고 그 시체가 동강에 버려지자 이를 거두어 이곳에 매장한 충신입니다.

당시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엄흥도는 순조 33년(1833)에 공조판서에 추증되었고, 고종 13년(1876)에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았습니다.

 

영월 장릉 재실

 

숙종 25년(1699)에 건립된 재실로 1932년에 중건되었습니다.

능을 지키는 참봉 1인과 수호군 9명이 기거했고, 매년 단종 제향을 지낼 때 제물을 준비하고 제기를 비롯한 각종 사용기구를 보관하는 곳입니다.

 

장릉 재실 모습

 

재실 마당에 있는 향나무

 

 

영월에 있는 선돌, 한반도지형, 청령포 등은 두세 번 방문한 곳인데 비해, 영월 장릉은 이번에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장릉에는 다른 조선왕릉과는 다른 충절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에서 제일 멀리 떨어져 있는 조선왕릉, 그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다시 접하니 당시 단종의 심경을 헤아려보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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