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사도세자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의 왕릉, 화성 융건릉(융릉과 건릉, 현륭원)
화성 융릉과 건릉(융건릉)은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현경왕후)가 묻혀 있는 융릉과 정조와 효의왕후가 잠든 건릉을 말합니다.
조선후기 문예부흥의 주역이었던 정조는 비극의 주인공인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평생을 정치개혁과 아버지에 대한 회한으로 첨철했던 임금이었습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던 동대문 배봉산에서 화성군 호산자락에 모시고 융릉이라 했으며, 융릉의 원찰인 용주사를 중창했습니다.
그리고 정조가 죽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묻힌 융릉 서쪽에 자신과 효의왕후가 함께 묻혀 있습니다.
화성 융릉과 건릉은 10여년 만에 방문했는데요.
여름이라 덥지만, 흐린 날씨에 소나무숲이 울창해서 산책하기 좋은 무척 좋았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분화유산에 등록된 조선왕릉 중 하나인 화성 융건릉 풍경을 담았습니다.
화성 율릉과 건릉(융건릉)은 화성시 안녕동, 화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 21대 임금인 영조는 첫째 아들 효장세자가 10년 만에 죽고, 42세에 어렵게 둘째 아들(사도세자, 장헌세자)을 얻었는데요.
총명한 아들을 대견해했으나 심각하게 치닫던 당쟁으로 부자간의 불신이 깊어져 결국 뒤주 속에 갇혀 죽게 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10살이던 사도세자의 아들, 조선 제22대 임금이 된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수원화성과 행궁이 만들어졌고, 그리고 이곳에 융건릉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너무 가혹한 벌을 내렸다며 후회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사후 아들의 왕세자 신분을 회복시켜 사도세자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장헌세자라는 칭호를 올렸고, 동대문구 배봉산 수은묘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영우원이라 하며 한 단계 격상시켰습니다.
그리고 1789년(정조 13) 정조는 아버지의 무덤을 화성 화산으로 옮기면서 이름도 현륭원으로 바꾸며 특별히 격을 높여 조성했습니다.
1815년(순조 15) 혜경궁 홍씨(현경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현륭원에 합장하였고, 대한제국 1대 황제였던 고종이 1899년 원을 능으로 높여 융릉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융건릉 입구
조선시대 희대의 폭군이라는 연산군은 그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이야기를 듣고 패륜을 저지르며 왕으로부터 축출을 당하고 군으로 격하되었죠.
이에 비해 정조는 어릴 때 비극적 트라우마로 인해 제2의 연산군이 될 것이라는 노론의 예측과는 다르게 복수 대신 공부와 할아버지의 탕평책을 이어가는 등 대통합 정치를 실현해 나갔습니다.
연산군과 정조는 똑 같이 어린 시절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겪었지만, 어떻게 처신했는지에 대해서 역사는 비교평가하고 있습니다.
화성 융건릉(융릉과 건릉) 관람안내
관람시간 2~5월/9~10월 09:00~18:00, 6~8월 09:00~18:30, 11~1월 09:00~16:30(1시간 전 입장마감)
휴무일(휴관일) 매주 월요일
입장료(관람료) 25~65세 1,000원, 청소년/군인/어린이/경로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관람 소요시간 1시간(융건릉만 관람) ~ 1시간 30분(산책로)
융릉과 건릉 안내도
1762년 정조(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지금의 동대문구 배봉산 아래에 수은묘를 조성했고, 1776년 정조가 왕위에 올라 아버지 무덤을 묘에서 원으로 격을 올리면서 영우원이 되었습니다.
1789년 다시 영우원을 이곳 화성 화산으로 옮겨 와 현륭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신분을 왕으로 높이고자 했으나 생전에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화성 화산에 모신 현륭원을 왕릉에 버금가도록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1대 황제가 된 고종은 직계 선왕들의 신분을 황제로 높이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사도세자를 왕으로 높여 장종으로, 현륭원을 융릉으로 높였고, 곧이어 장종을 다시 황제로 높여 장조라 했습니다.
융건릉 입구 모습
입구에는 융릉.건릉 역사문화관이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40기의 조선왕릉 중 융건릉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조선왕릉에 대한 내용과 융건릉과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글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선왕릉] 화성 융릉과 건릉(융건릉) 역사문화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이야기
조선왕릉과 조선왕 계보(조선왕 순서) 알아보기
융건릉 재실
제례에 앞서 제관들이 미리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며, 평소에는 참봉 등의 관리가 상주하면서 왕릉을 돌보는 곳이었습니다.
재실의 주요 시설로는 재실(좌) 외에 향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례업무를 주관하는 전사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행랑채(우) 등이 있습니다.
재실 앞에 있는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
비자나무와 비슷하게 생겨서 개비자란 이름이 붙어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 돼 있습니다.
남해안의 따뜻한 곳에 자라는 비자나무보다 훨씬 추운 중부지방에까지 서식하는 비자나무라고 합니다.
재실에서 바라본 융건릉 앞 풍경
화성 융건릉 입구에 있는 주차장 버스와 승용차 주차장이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융건릉 앞에는 식당과 카페가 무척 많은데요.
조선왕릉 중에서 상업시설이 제일 많이 있는 왕릉이 아닌가 싶습니다.
화성 융건릉 관람로 안내
융건릉만 관람할 경우 융릉 - 들꽃마당 - 건릉 순으로 돌면서 관람하면 되며, 소요시간은 40~50분 정도입니다.
산책로를 따라 융건릉을 한 바퀴 돌면 1시간 30분~2시간 정도 잡으면 됩니다.
산책로는 12월~5월 15일까지는 산불조심 기간이라 개방하지 않고, 5월 16일~11월까지만 개방하고 있습니다.
제실 뒤에 있는 야생화 정원
융건릉 입구에 뛰어놀고 있는 노루
두 마리가 신나게 뛰다가 사람들을 보니 금세 숨어버리네요.
이렇게 왕릉에서 노루를 만나니 무척 반갑더군요.
융건릉은 개인적으로 10년 만에 방문했는데요.
예나 지금이나 소나무 숲이 무척 아름다운 융건릉입니다.
초록초록한 땅에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들
눈으로 호강하고 있습니다.
융릉 입구인 금천교
융건릉 산책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좌측에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융릉 앞에 있는 곤신지라고 합니다.
곤신지는 1789년(정조 13) 현륭원(융릉)이 현 동대문구 배봉산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긴 후 이듬해에 조성한 원형의 연못입니다.
조선왕릉 중 드물게 연못을 원형으로 조성해 용의 여의주 형상이라고 하는데요.
이 연못은 남서 방향으로, 이 자리의 융릉의 생방(수지리 용어로 능 혹은 묘자리에서 처음 보이는 물을 지칭)이기 때문에 연못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먼저, 융릉입니다.
융릉은 조선 21대 왕 영조의 둘째 아들인 장조(사도세자, 1735~1762)와 현경왕후 홍씨(혜경궁, 1735~1815)의 조선왕릉입니다.
1762년 장조(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지금의 동대문구 배봉산 아래에 수은묘를 조성했고, 1776년 정조가 왕위에 올라 아버지 무덤을 묘에서 원으로 격을 올리면서 영우원이 되었습니다.
1789년(정조 13) 정조는 아버지의 무덤을 화성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으로 바꾸며 특별히 격을 높여 조성했습니다.
1815년(순조 15) 혜경궁 홍씨(현경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현륭원에 합장하였고, 1899년 원을 능으로 높여 융릉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혜경궁 홍씨(현경왕후, 1735~1815)는 정조의 어머니로 사도세자의 빈으로 세자빈이 되었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영조는 사도세자라는 호를 주며 현경왕후에게는 혜빈이라는 존호를 내려주었습니다.
1776년 정조는 즉위한 뒤에 혜빈궁의 명칭을 혜경궁으로 바꾸었으며, 1783년(정조 7)에는 자희와 효강이라는 존호를 올렸습니다.
혜경궁 홍씨는 남편인 사도세자(장조)의 죽음에 관한 자서전인 한중록을 쓰기도 했습니다.
향로와 어로
향로는 제향을 지낼 때 제관이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며, 어로는 왕이 제향을 올리려 올 때 다니는 길입니다.
관람할 경우엔 어로를 따라 걸으면 됩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신분을 왕으로 높이고자 했으나 생전에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화성 화산에 모신 현륭원을 왕릉에 버금가도록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1대 황제가 된 고종은 직계 선왕들의 신분을 황제로 높이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사도세자를 왕으로 높여 장종으로, 현륭원을 융릉으로 높였고, 곧이어 장종을 다시 황제로 높여 장조라 했습니다.
왕릉 앞 정자각 동서에는 능을 지키는 수복이 머무는 건물인 수복방과 제향을 올리는 음식을 준비하는 건물인 수라간이 있는데요.
융릉에는 서쪽에 수라간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정자각 바로 동쪽에는 비각이 있는데요.
비각은 왕의 행적을 적은 신도비니 표석이 있는 건물로 사도세자(추존 장조)와 혜경궁 홍씨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융릉 정자각
제향을 지내는 건물로 위에서 봤을 때 정(丁) 자 모양을 한 건물이라 정자각이라 부릅니다.
정자각 내부 모습
왕릉 제향 진설도 및 기신제
융릉 모습
동대문구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수은묘)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현륭원이라 부르고, 당시 원이었지만 왕릉형식에 따라 조성한 곳입니다.
융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합장묘로 만들어졌습니다.
융릉 정자각 서쪽으로 바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융릉과 건릉 중간에 넓게 펼쳐진 초원이 나오는데 들꽃마당이라고 부르고 있더군요.
건릉으로 이동하는 길에도 소나무숲이 울창하고요.
장수하늘소 무리가 소나무에 무더기로 붙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건릉으로 가는 길은 참나무 숲입니다.
건릉은 융릉 곁에 있으며, 조선 22대 임금 정조(1752~1800, 재위 1776~1800)와 효의왕후 김씨의 조선왕릉입니다.
1789년 정조가 사도세자의 무덤을 이곳으로 옮겨 왔고, 정조 자신도 이곳에 무덤을 만들고자 뜻을 밝혀 1800년 정조가묻히며 건릉이라 부르고있습니다.
정조는 1800년 세상을 떠난 뒤 정종이라 불리게 되었고, 능은 평소 아버지 가까이 묻히기를 원했던 뜻에 따라 현륭원 동쪽에 만들고 건릉이라 불렀습니다.
1821년(순조 21) 왕비 효의황후의 능을 만들 때 현재의 터가 좋지 않다고 해서 건릉을 현륭원의 서쪽인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입니다.
조선을 이은 대한제국 1대 황제 고종이 1899년 정종을 황제라 추존해 정조라 부르게 하고, 건릉은 왕릉의 형식을 그대로 둔 채 표석만 황제릉의 내용으로 바꾸었습니다.
효의황후 김씨는 1762년(영조 38) 정조가 왕세손일 때 왕세손빈에 책봉되었습니다.
1776년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고, 1821년 세상을 떠나 효의왕후로 불렸습니다.
정조의 건릉에 함께 모시려 했으나 능 자리가 좋지 않다 하여 건릉을 융릉 동쪽으로 옮겨 함께 모셨습니다.
건릉 향로와 어로
건릉 정자각
멀찍이 떨어져 있는 수라간과 비각
건릉 정자각 내부
진설도와 기신제
정자각에서 바라본 건릉 입구
건릉 역시 합장릉인데요.
정조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 1821년 효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이곳으로 합장릉으로 조성한 것입니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를 화성으로 옮긴 후 화산 부근의 읍치를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계획도시 수원 화성을 축성했습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수원화성은 축성 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00년 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수원 화성행궁은 수원 화성의 부속건물로 정조가 현륭원에 들릴 때 머물다 간 곳입니다.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 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이 묻어 있는 것이며,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수원 화성박물관과 용주사 기획전시
수원 화성행궁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동북각루)와 화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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