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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여행

[고성 화진포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 이승만 정권의 2인자, 이기붕 별장

by 휴식같은 친구 2024.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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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화진포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 이승만 정권의 2인자, 이기붕 별장

 

 

화진포는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있는 동해 연안에 형성된 호수(석호)로 해당화가 꽃 피는 나루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화진포는 동해안의 석호 중에서 둘레가 16㎞로 최대 규모입니다.

 

화진포의 아름다운 호수와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한국전쟁 전후로 남북의 지도자들의 별장으로 이용했는데요.

이승만 별장을 비롯하여 이기붕 별장, 화진포의 성이라 불리는 북한의 김일성 별장 등이 있으며, 이곳을 일컬어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이라 부릅니다.

 

고성 화진포, 화진포해수욕장 전망의 김일성 별장(화진포의 성)

[고성 화진포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 이승만 정권의 2인자, 이기붕 별장

[고성 화진포] 이승만 별장과 이승만대통령 기념관

 

이번 이야기는 이승만 정권의 2인자이면서 비참하게 생을 마친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 이기붕 별장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김일성 별장에서 나오면 소나무 숲 사이에 이기붕 별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기붕 별장은 이승만 별장, 김일성 별장과 함께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 통합관람권으로 함께 관람할 수 있습니다.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11~2월 09:00~16:30, 3~10월 09:00~17:00

휴무일 연중무휴

관람료(입장료) 통합권 어른 3,000원, 청소년/어린이 2,300원

(장애인, 유공자, 현역군인은 무료, 고성군민은 50% 할인)

통합관람권 이용처 화진포 생태박물관, 김일성별장, 이기붕별장, 이승만별장

주차장 무료

 

이기붕 별장 가는 길

 

이기붕 별장 뒤쪽 모습

 

이기붕 부통령 별장도 김일성 별장처럼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된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 북한 공산당의 간부휴양소로 사용되다가 휴전 이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개인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1999년 7월에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으로 개수하여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이기붕 전시관

 

이기붕(1896~1960)은 효령대군 보의 17대손이며, 서울출생으로 보성학교 졸업 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가정형편으로 중퇴했습니다.

선교사 무스의 통역을 하다가 그의 도움으로 상해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데이버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뉴욕에서 허정 등과 삼일신문을 발간에 참여하다가 1934년 귀국하여 광산사업을 했고, 광복 후 통역일을 하다가 이승만의 신임을 얻어 비서가 되었습니다.

 

화진포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이기붕 별장

 

 

1949년에 서울시장, 1951년 국방부장관, 1952년 대한체육회장, 1953년 자유당 총무부장을 맡으며 자유당 2인자가 됐고, 1954년엔 3대 민의원 및 의장에 당선되었습니다.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위해 초대 대통령의 중임제한 철폐라는 개헌안을 발의했으나 1명이 미달되어 부결되었으나 바로 다음날 일명 사사오입 사건을 통해 가결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56년 자유당 공천으로 부통령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하고 3~4대 민의원 의장이 되었습니다.

1960년 3월 15일 제5대 정.부통령선거에서 당선됐으나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9 혁명으로 부통령을 사임했습니다.

 

 

 

이후 경무대에 피신해 있다가 장남 강석의 권총으로 전 가족이 자살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그가 살던 집은 4.19혁명 학생도서관이 되었습니다.

 

부인 박마리아와의 사이에 강석, 강욱 등 두 아들이 있었는데요.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그의 아들이 일찍 죽자, 사후 후계구도를 위해 이기붕의 아들인 강석을 양자로 입적시킨 상태였습니다.

 

이기붕 별장 앞마당과 화진포

주변의 소나무가 멋스럽게 서 있습니다.

 

별장에서 보이는 화진포 풍경

 

이기붕 별장 응접실 모습

 

생전의 이기붕 모습

 

이기붕 별장의 집무실

 

이기붕 별장 침실

 

이기붕과 일가의 시신은 누군가에 의해 수습되어 1960년 4월 30일 수도육군병원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렀다고 하는데요.

당시 장례식에는 이승만, 프란체스카 도너, 허정 등 내각 인사와 여야 국회의원 일부가 참여했습니다.

 

장지는 망우리 공동묘지이며 먼저 죽은 딸 이강희의 묘 근처에 이기붕 내외의 묘, 아들 이강욱, 이강석의 묘가 그 아래에 있다고 합니다.

 

 

이승만도 그렇지만, 이기붕 역시 당시 대통령 욕심이 있을 정도로 둘 다 권력욕에 눈이 멀어 많은 국민을 죽인 장본인입니다.

역사는 이를 제대로 평가하고 수많은 희생으로 일궈내고 이어져 온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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