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휴식같은 여행으로의 초대
충청남도.대전시.세종시

추사 김정희 집안의 원찰, 화암사와 김정희 선생 필적암각문

by 휴식같은 친구 2025. 7. 25.
반응형

예산 화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인데요.

사찰 규모는 작지만, 추사 김정희 가문의 원찰이란 특징으로 관광객들이 종종 찾는 곳입니다.

 

화암사의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삼국시대 고찰이라 추측하고 있는데요.

이곳은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이자 영조의 사위 월성위 김한신(1720~1758)이 영조의 부마가 되었을 깨 별사전으로 하사 받으면서 가문의 원찰이 되었습니다.

 

폐사되고 탑만 남아 있던 것을 월성위 김한신이 1752년(영조 28)에 중건했고, 영조가 절의 이름을 화암사라 명명했다고 하는데요.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1720년생)가 이복동생인 사도세자(1735년생)에 비해 영조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헌종 대에 다시 훼손되자 추사 김정희 일가가 다시 중건했는데, 현재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는 이곳 화암사를 자신의 이상향으로 만들고자 했는데요.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스승인 담계 옹방강을 상징하는 여러 문구들을 이곳 병풍바위와 쉰질바위에 새겨 놓았는데 그것이 김정희 선생 필적암각문입니다.

 

추사 김정희 고택과 그이 묘, 추사 기념관 등이 있고,

이곳으로부터 북쪽으로 이동하면 투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 묘와 화순옹주 홍문이 있으며,

그 옆으로 백송공원과 김정희가 중국에서 가져와 심은, 지금은 천연기념물이 된 용궁리 백송과 추사의 고조부인 급류정 김흥경의 묘가 있습니다.

추사고택 뒤의 작은 봉우리를 앵무봉이라고 합니다.

 

추사 김정희의 생애, 예산 추사기념관

[예산 여행] 추사 김정희 고택과 김정희 묘

예산 화순옹주 홍문과 월성위 김한신 묘

예산 백송공원, 용궁리 백송과 급류정 김흥경 묘

 

화암사는 추사 김정희 고택에서 남쪽에 있는 오석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하면서 서울과 이곳 예산의 땅을 하사 받았고, 그 하사 받은 땅에 사찰이 있어 가문의 원찰로 삼은 것입니다.

 

추사는 이곳 오석산 화엄사에서 불교에 정심하였고, 헌종 12년(1846) 제주 적소에 유배를 떠난 상황에서 문중에 서한을 보내 화암사 중건을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추사 김정희의 동생인 김명희는 1848년(헌종 14)에 다시 지었습니다.

김명희 역시 추사와 같은 서예가이자 금석학자, 실학자로 학문이 깊고 글과 시문에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화암사 중건 때 추사가 제주에서 써 보낸 시경루, 무량수각 편액은 현재 예산 수덕사 근역성보관에서 소장 관리하고 있으며, 화암사 뒤편 오석산 암벽엔 친필각자한 시경, 천축고선생댁, 소봉래 등의 필적암각문의 유적이 있습니다.

 

230여년 된 느티나무

월성위 김한신이 화암사를 중건하고 이후 훼손된 후 다시 중건하면서 심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무 규모가 작아 오래된 나무로 보이지 않는데, 느티나무 기둥을 보니 생각이 달라집니다.

오래된 고목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둥의 2/3는 파헤쳐졌고, 일부 가지가 돋아나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고택이 있는 마을로 내려가는 길

이곳에서 1,3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화암사 입구 주차장과 느티나무 모습

 

위쪽에도 230여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 역시 기둥만 오래된 역사를 보여주고 있고, 일부 가지만 자라고 있습니다.

 

화암사 요사채 모습

 

정통 불교 양식의 건축물이 아닌 가문의 원찰이다 보니 사찰 건축물과 민간 건축물 형식이 혼합된 듯한 모습으로 화암사란 현판만 아니면 사찰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 건물입니다.

 

‘ㄷ자형’의 요사채는 김한신이 지은 건물로 그 역사가 깊은데요.

화강석재 기단 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앞면 6칸으로 왼쪽의 협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고, 2칸의 어칸과 오른쪽 협칸은 원통보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앞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했고 오른쪽의 툇간은 누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건물은 방형의 화강석재로 된 자연 초석 위에 방형의 기둥을 올리고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요사채를 돌아 뒤로 가니 사찰다운 면모가 나타나는데요.

근래에 지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한 대웅전이 있습니다.

 

초기의 대웅전엔 동자 관음보살상을 봉안하고 있었는데 60여 년 전에 도난당하여 지금은 향천사의 천불 중 하나를 봉안하고 있답니다.

 

화암사는 비구니 스님의 수도도량이라고 합니다.

시골의 작은 사팔이 갖는 고즈넉함과 단정함이 묻어나네요.

 

대웅전 옆에 있는 작은 5층 석탑이 화암사의 오래된 역사를 알고 있을 것 같네요.

 

화암사 약사전

 

5층 석탑 앞에 있는 화암사 범종각

 

화암사 전각들 모습

 

옛날 탑재석을 보완하여 세운 화암사 오층석탑

화강석재로 만든 오층석탑으로 상대갑석과 1층 탑신석, 2~5층의 옥개석은 옛날 탑재석이고 나머지는 모두 보완된 것이라고 합니다.

2개의 별석으로 된 지대석 위에 우주를 모방해 새긴 면석을 올리고 위에 하나의 대판석으로 이루어진 상대갑석을 올리고 있으며, 상대갑석은 옥신 괴임 부분을 몰딩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각각의 탑신석과 옥개석은 하나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고 탑신석은 각각 우주를 모방해 새겨져 있습니다.

 

김정희 선생 필적암각문은 그 옆으로 조금 이동하면 됩니다.

 

추사 김정희는 이곳을 자신의 이상향으로 만들고자 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스승인 담계 옹방강을 상징하는 여러 문구들을 이곳 병풍바위와 쉰질바위에 새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시경(詩境), 소봉래(小蓬萊)가 그것인데요.

옹방강의 서재에서 보았던 대련과 석순에 새겨져 있던 문구에서 천축고선생댁과 소봉래를 각각 지어냈던 것이고, 시경루도 담계 옹방강의 서실인 시경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소동파를 존경했던 응방강 그리고 소동파와 옹방강을 존경했던 추사, 이런 추사는 자신이 존경했던 소동파와 옹방강을 이 오석산에 흔적으로 남겨두어 자신의 학문의 뿌리 또는 이상향 내지는 선경으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김정희 선생 필적암각문이 적힌 커다란 2개의 병풍바위

이곳에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시경(詩境)이 새겨져 있습니다.

 

먼저,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이 새겨진 바위입니다.

 

추사 김정희가 중국 연경에 갔을 때 스승인 담계 옹방강의 집 대문 양쪽에 

想見東坡舊居土 嚴然天竺古先生’
이라는 대련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 대련에서 추사 김정희 선생은 ‘천축고선생댁’이라는 문구를 떠올려, 이곳 화암사 뒤편 병풍바위에 유려한 행서로 써서 새겨놓은 것입니다.

 

이는 조선후기 소동파를 흠모하던 선비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문구이며, 소동파와 석거묘를 동일시한 것으로 추사 김정희 선생이 얼마나 소동파를 흠모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암벽에는 시경(詩境)이라고 써 있습니다.

 

시경은 시의 경계 또는 시흥을 불러일으키는 풍취라는 뜻으로 좋은 경치를 뜻하기도 하는데요.
이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중국 연경에 갔을 때 스승인 담계 응방강으로부터 받은 탁본 글씨를 새겨놓은 것입니다.


예서로 쓴 이 글씨는 송나라 시인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던 인물인 육유의 글씨라고 합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이 좋은 글씨를 후대에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이곳 병풍바위에 새겨놓은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이라는 견해가 있어 연구가 필요한 필적이라네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 글자 암각은 소봉래(小蓬萊)입니다.

이곳에서 370미터를 걸어가야 볼 수 있어서 과감히 포기! ㅎㅎ

 

소봉래는 신선이 사는 봉래산에 비긴 것으로 이 또한 일찍이 옹방강이 자신의 집에 소봉래각이라는 현판을 걸어 놓은 것을 본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예산 화암사는 김한신을 비롯한 김정희, 김명희 등 조선 후기에 경주김씨 일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중건된 사찰로, 주변의 김정희 선생 유적, 화순옹주 홍문 등과 함께 예산에서 추사 일가의 행적을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김정희 고택과 추사기념관 등을 둘러본 후 마지막으로 화암사를 찾으면 김정희의 흔적찾기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