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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북부.인천시 여행

[조선왕릉] 조선왕릉이 가장 많은 구리 동구릉(입장료 및 주차장 정보)

by 휴식같은 친구 2026.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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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에 있는 동구릉은 서울 동쪽에 있는 9기의 조선왕릉(15개의 봉분)이라는 의미로 조선왕릉이 제일 많은 곳인데요.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원이나 묘가 아닌 능만 있는 곳이 바로 동구릉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1408년(태종 8)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이 처음 조성되면서 조선왕릉 중 1397년(태조 6)에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인 정릉 다음으로 오래된 곳이며, 문종의 현릉, 선조의 목릉, 현종의 숭릉, 장렬왕후의 휘릉, 단의왕후의 혜릉, 영조의 원릉, 헌종의 경릉이 차례로 조성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능의 개수에 따라 동오릉, 동칠릉으로 불리다가 1855년(철종 6) 추촌 문조(효령세자)의 수릉이  이곳에 옮겨지면서 동구릉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6일부터 이곳 구리 동구릉을 비롯해 남양주 광릉, 화성의 융건릉 등 9개 조선왕릉 왕릉 숲길을 6월까지 일시 개방한다고 해서 들렀는데요.

2018년에 찾은 적이 있으니까 한 8년 만에 동구릉을 찾은 것 같습니다.

 

먼저, 조선왕릉이 가장 많이 있는 구리 동구릉에 대해서, 그리고 동구릉 입장료와 주차장 등 관람정보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구리 동구릉 안내도

 

입구에 동구릉 역사문화관이 있어 조선왕릉과 동구릉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들어사면 다른 조선왕릉에 없는 동구릉 입구라는 의미의 홍살문이 별도로 세워져 있으며, 9기의 제사를 관장하는 재실이 있습니다.

 

관람순서는 위 안내도의 번호 순서로 관람하면 되는데요.

잔 아래와 같이 반대방향으로 아래와 같이 관람했습니다.

 

입구 - 재실 - 수릉 - 현릉 - 건원릉 - 목릉 - 휘릉 - 원릉 - 경릉 - 혜릉 - 동구릉 연지 - 숭릉 

 

9개의 조선왕릉과 함께 왕릉 숲길까지 걸으니 소요시간은 3시간, 이동거리는 약 6~7km, 걸음으로 15,000보를 넘게 걸었습니다.

 

 

동구릉은 구리시 인창동 검암산 동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데, 나중에 동구릉이 되면서 검암산은 구릉산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조선왕릉은 명당터에 자리하는데, 9개의 왕릉이 있을 정도로 이곳 동구릉은 천하의 명당으로 꼽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구리 동구릉 관람안내

 

관람시간 : 2~5월/9~10월 06:00~18:00, 6~8월 06:00~18:30, 11~1월 06:30~17:30

(매표 및 입장은 마감 1시간 전까지 가능)

휴무일(휴관일) 매주 월요일

관람 소요시간 2~3시간

관람요금(입장료) 25~64세만 1,000원, 그 외 무료

주차장 30분 500원, 추가 10분당 200원

 

조선시대 왕은 총 27명, 조선왕릉은 총 42기가 있구요.

이중 2기는 북한(태조의 비 신의왕후의 제릉, 정종과 정인왕후의 후릉)에 있고, 나머지 40기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동구릉에는 40기의 조선왕릉 중 9기의 왕릉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총정리(세계유산, 기록유산, 무형문화유산)

 

동구릉에서 꼭 봐야 할 왕릉은 단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

 

건원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의 능으로 다른 조선왕릉과 다르게 봉분에 잔디가 아닌 억새(청완)가 덮여 있습니다.

아는 태조의 유교에 따라 고향인 함흥의 억새로 조성했기 때문입니다.

 

건원릉의 봉분 억새는 1년에 한 번 한식날에 풀베기를 했고, 전통에 따라 지금도 봉분 억새를 베고 고유제를 드리는 청완 예초의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동구릉 입구로 들어서면 동구릉 역사문화관이 있습니다.

조선왕릉과 동구릉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으니 관람 후 돌아보면 좋습니다.

 

역사문화관 관람시간은 2~10월 -09:00~17:50, 11~1월은 09:00~17:20입니다.

 

조선왕릉 분포도
 
양주 온릉
김포 장릉
파주 장릉, 파주 삼릉
고양 서오릉, 고양 서삼릉
서울 태릉과 강릉, 정릉, 의릉, 선릉과 정릉, 헌릉과 인릉
구리 동구릉
남양주 사릉, 홍릉과 유릉, 광릉
여주 영릉과 영릉
화성 융릉과 건릉
영월 장릉 

 

조선왕릉의 공간구성

 

조선왕릉은 세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능침구간은 왕과 왕비의 봉분(능침, 능상)이 있는 성역 공간으로 곡장, 봉분, 병풍석, 난간석, 석양, 석호, 망주석, 석상(혼유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마 등이 있습니다.
제향공간은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하는 영역으로 제자를 지내는 곳으로 예감, 산신석, 신로, 비각, 정자각이 있습니다.  
아울러 진입공간은 왕릉의 관리와 제례준비를 위한 공간으로 수라간, 수복방, 향로, 어로, 판위, 홍살문, 금천교, 재실 등이 있습니다.

 

조선왕릉 신도비와 표석

 

왕릉에 세워진 비석에는 신도비와 표석이 있습니다.

신도비에는 왕의 업적을 나열한 글인 서문과 왕의 업적을 찬양하는 노래글이 적혀 있는데, 북한에 있는 환조(태조의 아버지) 정릉과 태조의 첫 번째 왕비 신의왕후의 제릉, 태주 건원릉, 태종 헌릉, 세종 영릉까지 조선 초기에만 만들어졌습니다.

5대 임금인 문종의 현릉부터는 왕의 업적이 신록에 기록되어 있으니 신도비를 굳이 세울 필요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왕릉에 신도비 대신 표석을 세웠습니다.

표석 앞면에는 왕릉에 묻힌 왕이나 왕비, 능의 이름을 적고 뒷면에는 생년월일과 재위기간, 왕릉을 만든 날과 위치 등을 기록했습니다.

표석은 효종의 영릉에 처음 세웠고, 이후 모든 능에 세웠습니다.

 

동구릉

 

조선왕릉은 조선(1392~1897)의 왕과 왕비 그리고 대한제국(1897~1910)의 황제와 황후 73명의 무덤을 일컫습니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왕릉 조성과 관리에 예와 효를 갖추어 정성을 다했습니다.

충수사상에 따라 최고 명당에 자리를 정하고, 주변 지형과 경관을 그대로 살려 왕릉을 조성했습니다.

 

그중 동구릉에는 400여 년에 걸쳐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를 모신 9기의 능이 섬암산 산세를 따라 여러 언덕에 자리 잡았습니다.

 

구리 동구릉의 조선왕릉 9기

 

건원릉 : 제1대 태조 이성계의 단릉
현릉 : 제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동원이강릉
목릉 : 제14대 선조와 원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동원이강릉(동원삼강릉)
휘릉 :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단릉
숭릉 :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쌍릉
혜릉 : 제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의 단릉
원릉 : 제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쌍릉
경릉 : 제24대 현종과 원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삼연릉
수릉 :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합장릉

 

동구릉의 보물, 정자각

 

정자각은 왕릉에서 제향을 지내는 건물로 침전이라고도 하며, 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丁자와 같아 정자각이라 불렀습니다.

제향음식을 차려놓는 정전과 제례를 올리는 배위청이 합쳐진 전각입니다.

 

정자각의 기본형태는 태조 건원릉 정자각을 따른 정면 3칸, 배위청 2칸 등 총 5칸입니다.

15세기부터는 규모를 늘려 8칸의 정자각(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 정자각이 해당)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동구릉에는 1408년에 세워진 태조 건원릉의 정자각, 1674년에 세워진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 정자각, 1608년에 세워진 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의 목릉 정자각 등입니다.

건원릉의 정자각은 조선왕릉의 모범이 되는 기준이고, 숭릉 정자각은 8칸 규모에 팔작지붕을 올린 17세기 정자각의 유일한 예이며, 목릉 정자각은 남아있는 정자각 중 유일하게 다포 형식으로 지어진 정자각입니다.

 

다양한 모습의 동구릉 왕릉

 

원래 왕과 왕비를 봉분 하나에 함께 모시는 합장묘를 원칙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능 자리의 환경이나 당시 여러 사정으로 왕과 왕비를 한 곳에 모시기 힘든 상황이 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지어졌습니다.

 

한 분을 모시는 단릉, 두 분을 합장한 합장릉, 두 분을 이웃해서 모시는 쌍릉, 세 분을 이웃해서 모시는 삼연릉, 산줄기를 따로 해서 모시는 동원이강릉, 위와 아래에 모시는 동원상하릉 등이 있습니다.

 

동구릉의 건원릉, 휘릉, 혜릉은 단릉

수릉은 합장릉

숭릉, 원릉, 경릉은 쌍릉

현릉은 동원이강릉

목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한 동원삼강릉(동원이강릉)입니다.

 

동구릉 석물의 변화

 

조선왕릉 봉분 주위에는 문석인, 무석인, 석호, 석양 등 다양한 석물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변함없었지만, 모양만큼은 시대에 따라 변했다고 합니다.

 

동구릉에서는 1408년 건원릉 석물부터 1846년 수릉의 석물까지 5세기에 걸친 왕릉 석물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일반인들이 봉분까지 갈 수 없어 볼 수는 없지만.

 

동구릉 고석

 

1408년에 조성한 건원릉의 혼유석과 고석은 처음 조성될 때 만들어진 것으로 오랜 시간을 거치며 표면은 검게 변하고, 틈이 갈라지는 등 자연적인 손상이 생겼습니다.

 

이 고석은 일부가 깨진 채 혼유석을 받치고 있었던 것으로, 국가유산청에서 혼유석과 고석 5기에 대해 보존처리를 진행한 후 고석 1기를 이곳에 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구릉 역사문화관에서 나오면 우측에 동구릉 석물부재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1970년대 해체된 동구릉 외금천교 부재와 동구릉 내에 왕릉을 조성하고 부수하거나 옮기는 과정에서 사용하지 않게 된 석물들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난간석, 귀틀석, 온장석, 주초석, 장대석 등으로 추정되는 것들입니다.

 

조선왕릉 숲길 개방 안내

 

세계유산인 조선왕릉의 숲길 9곳을 지난 5월 16일부터 6월 30일까지 개방하고 있습니다.

이곳 구리 동구릉의 휘릉~원릉 구간과 경릉~자연학습장에 이르는 2.7km 구간을 비롯해 남양주 광릉, 남양주 사릉, 태릉과 강릉, 의릉, 화성 융건릉, 파주 장릉, 파주 삼릉, 여주 영릉과 영릉 등 총 9곳의 조선왕릉 숲길입니다.

 

개방시간은 5월엔 09:00~17:00, 6월엔 09:00~17:30(1시간 전 입장마감)이며, 오는 10~11월 가을에 2차로 추가 개방합니다.

 

조선왕릉 숲길 개방, 구리 동구릉 왕릉 숲길

 

국가유산청에서 정한 왕릉 8경

 

1경 조선을 열다, 태조의 길(구리 동구릉)

2경 조선을 꽃피우다, 세종의 길(여주 영릉)

3경 조선을 그리워하다, 단종의 길(영월 장릉, 남양주 사릉)

4경 조선을 논쟁에 빠뜨리다, 왕과 신하의 길(파주 장릉)

5경 조선을 닷; 꽃피우다, 정조의 길(화성 융릉과 건릉)

6경 조선을 지키고 채우다, 광주 유수의 길(서울 헌릉과 인릉)

7경 조선을 이은 여상을 만나다, 사친의 길(고양 서삼릉, 파주 소령원)

8경 조선을 넘어 새롭게 나아가다, 대한 고종의 길(서울 의릉)

 

동구릉 왕과 왕비 이야기 해설 프로그램

 

동구릉 3인 3색이라는 프로그램으로 2시간 정도의 소요시간으로 해설을 하고 있네요.

조선왕릉에 대한 색다른 체험과 관람을 한다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동구릉을 본격적으로 관람을 시작합니다.

앞서 밝혔듯이 워낙 넓어서 왕릉 숲길까지 걷는데 2시간 50분, 도보로 15,000보 이상을 찍었습니다.

 

바로 앞에 동구릉 홍살문이 있는데요.

각 왕릉 앞에도 홍살문이 있고, 동구릉에는 이곳 왕릉의 입구에 별도의 홍살문을 설치한 점이 특이합니다.

 

동구릉 재실 앞에 핀 백당나무 꽃

 

백당나무 꽃은 하얀색의 꽃은 가짜꽃이라 하는 헛꽃이고, 가운데 노랗고 작은 꽃은 진짜 꽃인 참꽃이라고 한다네요.

헛꽃은 암술과 수술이 없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참꽃은 진짜 유성생식을 하는 꽃입니다.

 

동구릉 재실

 

재실은 평상시 종 5품인 영, 종9품인 참봉 등이 능역 관리를 위해 근무하는 곳인데요.

제례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사용합니다.

 

재실 모습

 

재실의 주요 시설로 집무실 외에도 형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행랑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재실이라 문양을 새기는 단청은 하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각 능에 따른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재실을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각 능별 재실은 없고 9개 능을 하나의 경계지역으로 하여 구릉 남쪽에 재실이 있습니다.

 

조선왕릉으로 들어가는 길은 어느 능이나 산림이 우거져 더울 때에도 걸을 만한 것 같습니다.

다만 한여름엔 날파리들이 많아서 가지 않는 것이 좋더군요.

 

동구릉 재실에서 직진해서 만난 첫 번째 동구릉의 조선왕릉은 수릉입니다.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합장릉입니다.

 

문조(1809~1830, 효명세자)는 순조와 순원왕후의 아들로 1812년(순조 12)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순조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다 2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때 시효를 효명세자라 했고, 아들 헌종이 즉위한 후 익종으로 추존,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 황제로 추촌되어 묘호를 문조로 바꾸었습니다.

 

[조선왕릉] 구리 동구릉, 추촌 문조(효명세자)와 신정왕후의 수릉

 

1830년 효명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당시 양주 의릉(경종의 능) 왼쪽 언덕인 현재의 정릉동 부근에 처음 능을 조성하고 수릉이라 불렀습니다.


1846년(헌종 12)에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태종의 헌릉이 있는 양주 대모산(현재의 내곡동 헌인릉 일대)으로 한 차례 자리를 옮겼고요.

 

이후 1855년(철종 6) 신정왕후(조대비)가 서초구의 능 자리 역시 풍수적으로 불길하다며 다시 이장을 요청했고, 이때 현재의 구리 동구릉으로 이장되며 두 번이나 이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890년 신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이곳 수릉에 합장되면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동구릉 수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수릉 옆에 이웃해 있는 동구릉의 두 번째 관람한 조선왕릉은 현릉입니다.

 

조선 5대 임금인 문종과 현덕왕후의 동원이강릉인데요.

천만 관객을 달성한 왕과 사는 남자의 비운의 왕인 단종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입니다.

 

[조선왕릉] 구리 동구릉, 조선 5대 임금인 문종과 현덕왕후의 현릉

 

문종(1414~1452, 재위 1450~1452)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아들로 8세에 왕세자로 책봉된 후 세종을 도와 실무정치를 익혔으나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병으로 어린 단종을 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덕왕후 권씨(1418~1441)는 화산부원군 권전의 딸로 1431년(세종 13) 왕세자였던 문종의 후궁이 되었고, 1437년(세종 19)에 왕세자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손인 단종을 낳고 곧바로 세상을 떠났고, 문종이 왕위에 오르지 왕후로 추존되었습니다.

 

현덕왕후의 무덤은 경기도 안산에 조성되었다가, 문종이 즉위 후 능으로 높여 소릉이라 불렀습니다.

이후 세조 대에 현덕왕후가 폐위되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1513년(중종 8)에 다시 왕후로 복위되어 능을 문종 능 동쪽 언덕으로 옮긴 것입니다.

 

야사에는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에 올라 급기야 죽이기까지 하자 꿈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의 얼굴에 침을 뱉자 세조의 아들인 의경세자가 죽고 세조는 등창(피부병)을 얻어 소생했다는 내용이 아직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현릉에서 숲길을 조금 걸어가면 동구릉의 세 번째 관람한 조선왕릉은 건원릉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단릉입니다.

 

[조선왕릉] 구리 동구릉,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태조(1335~1408, 재위 1392~1398)는 고려 말 뛰어난 장군으로 공민왕대부터 공을 여러차례 세웠습니다.

 

1388년 요동정벌을 위해 출정했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반정을 일으켜 최영 장군 등을 제거한 후 1392년 신진사대부 추대로 개경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재위 기간 동안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나라의 이름을 조선이라 하는 등 조선왕조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 황제로 추존되었습니다.

 

건원릉의 봉분은 다른 왕릉과 달리 잔디가 아닌 억새(청완)가 덮여 있는데, 이는 태조의 유언에 다라 고향인 북도(현 함흥)의 억새가 있는 흙을 가져와 덮은 것이라고 합니다.

건원릉의 정자각은 조선왕릉의 모범이 되는 기준으로  동구릉 숭릉과 목릉 정자각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건원릉에서 동쪽 숲길을 걸어가면 동구릉의 네 번째 관람한 조선왕릉은 목릉입니다.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와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의 동원이강릉(동원삼강릉)입니다.

 

[조선왕릉] 구리 동구릉,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의 목릉

 

선조(1552~1608, 재위 1567~1608)는 중종의 손자이자 덕흥대원군의 아들입니다.

재위 기간 동안 일본으로부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두 번의 침략을 당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겼었던 왕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이황과 이이 등 유학자들이 많이 배출되기도 했습니다.

 

의인왕후 박씨(1554~1600)는 반성부원군 박응순의 딸로 1569년(선조 2)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선조와의 사이에 자식을 얻지 못했습니다.

인목왕후 김씨(1584~1632)는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딸로 1602년(선조 35)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선조 사후 광해군과 대립하여 서궁(덕수궁)에 갇혀 지내다가 1623년 인조반정을 계기로 대왕대비가 되었습니다.

 

목릉 자리는 처음 의인왕후의 능이 유릉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이후 선조의 목릉은 현재의 경릉(헌종) 자리에 만들어졌다가 1630년(인조 8)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이후 인목왕후의 능이 오른쪽 언덕 위에 조성되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동일 지역 3개 언덕에 하나씩 능이 조성된 동원삼강릉은 목릉이 유일합니다.

 

목릉에서 왔던 길을 나와 건원릉 서쪽 숲길을 따라 이동하면, 동구릉 다섯 번째 관람한 조선왕릉은 휘릉입니다.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의 두 번째 왕비 장렬왕후의 단릉입니다.

 

[조선왕릉] 구리 동구릉, 조선 16대 임금 인조의 비인 장렬왕후의 휘릉

 

장렬왕후(1624~1688)는 한원부원군 조창원의 딸로 1638년(인조 16)에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현종 재위기간에 있었던 예송논쟁(효종과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어머니가 되는 장렬왕후의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대립한 사건)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인조의 조선왕릉은 파주 장릉에 있는데요.

여기에 인조와 첫 번째 왕비인 인열왕후의 합장릉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조선 16대왕 인조와 인열왕후의 조선왕릉, 파주 장릉

 

휘릉 왼쪽을 따라 왕릉 숲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동구릉 원릉까지 1.4km 이어져 있는데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걷기 좋은 숲길입니다.

 

조선왕릉 숲길 개방, 구리 동구릉 왕릉 숲길

 

휘릉에서 왕릉 숲길을 따라 걸으면 20분 정도 걸려 원릉에 도달하게 되는데요.

숲길을 걷지 않으면 서쪽으로 5분 정도 걸으면 됩니다.

 

동구릉의 여섯 번째 관람한 조선왕릉은 원릉입니다.
조선 21대 임금인 영조와 두 번째 왕비 정순왕후의 쌍릉입니다.

 

[조선왕릉] 구리 동구릉, 조선 21대 임금인 영조와 정순왕후의 원릉

 

영조(1694~1776, 재위 1724~1776)는 숙종과 숙빈 최씨의 아들로 1721년(경종 1)에 왕세자가 되었고,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습니다.

조선 27명의 왕 중 가장 오래 살았고(83세),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52년)습니다.

재위 중에 법제도와 국가의례를 정비했고, 탕평책과 균역법을 시행했습니다.

 

정순왕후 김씨(1745~1805)는 오흥부원군 김한구의 딸로 1759년(영조 35) 15세 나이로 당시 66세였던 영조의 두 번째 왕비가 되었습니다.

1800년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왕대비의 자격으로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기존 조선왕릉과 다르게 원릉부터 능침 중계와 하계 사이의 단을 없애어 문석인과 무석인을 하나의 단에 배치했습니다.

원래 영조는 생전에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무덤인 홍릉을 조성하면서 그 곁에 묻히고자 했으나,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현재의 자리에 영조의 능을 조성했습니다.

 

[조선왕릉] 고양 서오릉 - 경릉(덕종과 소혜왕후), 홍릉(정성왕후), 창릉(8대왕 예종), 대빈묘

 

이제 경릉으로 이동합니다.

왕릉 숲길 너무 시원해 보입니다.

 

경릉과 동구릉 왕릉숲길 가는 길

 

우측으로 가면 동구릉의 두 번째 왕릉숲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경릉에서 자연학습장까지 1.319km로 올라갔다가 빠지는 길이 없어 다시 내려오는 길입니다.

휘릉~원릉 구간에 비해 약간 경사는 있지만, 걸기에는 무난하고 마지막 지점엔 정원을 이루고 있는 자연학습장 구경도 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릉 숲길 개방, 구리 동구릉 왕릉 숲길

 

원릉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 동구릉의 일곱 번째 관람한 조선왕릉 경릉이 나옵니다.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과 첫 번째 왕비 효현황후, 두 번째 왕비 효정황후의 삼연릉입니다.

 

[조선왕릉] 구리 동구릉,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과 효현왕후, 효정왕후의 경릉

 

헌종(1827~1849, 재위 1834~1849)은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아들로 1834년 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재위 초반은 할머니인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고, 재위기간 어린 상태에 세도정치로 혼란스러워 15년 재위했지만 조선 왕 중 존재감이 많이 없었던 임금이었지 싶습니다.

 

효현황후 김씨(1828~1843)는 영흥부원군 김조근의 딸로 1837년(헌종 3) 10살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16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효정황후 홍씨(1831~1904)는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로 1844년(헌종 10) 왕비로 책봉되었고,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태후가 되었고, 헌종과 효현왕후, 효정왕후는 황제와 황후로 추존되었습니다.

 

경릉은 헌종과 두 왕후의 봉분 3개가 나란히 놓인 모습으로 조선왕릉 중 유일한 삼연릉입니다.

1843년 효현황후의 능이 조성되었고, 1849년 왼쪽에 헌종의 능이, 1904년 효정황후의 능이 가장 오른쪽에 조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경릉에서 내려와 서쪽으로 이동하면, 동구릉의 여덟 번째 관람한 조선왕릉은 혜릉입니다.
조선 20대 임금인 경종의 첫 번째 왕비 단의왕후의 단릉입니다.

 

[조선왕릉] 구리 동구릉, 조선 20대 임금인 경종의 단의왕후의 혜릉

 

단의왕후 심씨(1686~1718)는 청은부원군 심호의 딸로 1696년(숙종 22)에 왕세자빈이 되었으나 경종이 즉위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혜릉은 처음 왕세자빈묘로 조성되었다가 1720년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로 추존되었고, 묘를 능으로 올려 혜릉이라 했습니다.

 

 

단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선의왕후 어씨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조선 20대 왕 경종(1688~1724, 재위 1720~1724)과 경종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1705~1730)의 능은 서울 의릉에 있습니다.

 

조선 20대 임금(왕), 경종의 조선왕릉, 서울 의릉

 

혜릉에서 나와 서쪽으로 이동하면 동구릉에서 유일하게 조성되어 있는 연지와 숭릉으로 이어집니다.

 

동구릉 혜릉 앞 연지

 

숭릉 연지는 1674년(숙종 1) 왕과 왕후의 능을 만들 때의 담당기관인 산릉도감에서 조성한 인공연못입니다.

네모난 형태에 거운데 둥근 섬이 있는 방지원도형으로 네모는 땅을,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하는 우주관과 자연관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동구릉 내 유일하게 숭릉에만 연지가 있는데, 이는 동구릉 내에 형성된 3개의 물길(건원릉과 휘릉 사이, 원릉과 경릉 사이, 숭릉과 혜릉 사이)을 관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연지는 처음 조성된 숙종 대부터 영조, 정조, 고종 대까지 연못 둘레에 돌 축대를 정비하고 연꽃 종자를 능관으로 하여금 심고 기르게 했습니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물이 드나드는 입, 출수구 등 제방시설이 없어지고 변형되었다고 합니다.

2017년까지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연지에서 나와 위쪽으로 이동하면 동구름의 마지막인 아홉 번째로 숭릉이 나옵니다.

조선 18대 임금인 현종과 명성왕후의 쌍릉입니다.

 

[조선왕릉] 구리 동구릉, 조선 18대 임금인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과 동구릉 연지

 

현종(1641~1674, 재위 1659~1674)은 효종과 인선왕후의 아들로 역대 조선 임금 중 유일하게 외국(청나라 심양)에서 태어난 인물입니다.

재위 기간 동안 군사력 강화에 힘쓰고, 호남에서 대동법을 실시하여 농업을 발전시키고 두 차례 청나라 침략으로부터 국가 체제를 회복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명성왕후 심씨(1642~1683)는 청풍부원군 김우명의 딸로 1651년(효종 2) 왕세자빈이 되었고, 현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숭릉의 문석인과 무석인 등 일부 석물은 현재의 원릉 자리에 조성되었다가 옮겨진 효종의 옛 영릉 석물로, 영릉이 여주로 옮겨질 때 땅에 묻었다가 숭릉을 만들 때 다시 꺼내 다듬어 사용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동구릉의 9개 조선왕릉과 왕릉숲길을 영상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동구릉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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