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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여행

[낙산사 설경] 낙산사 입장료, 주차장(의상대, 홍련암, 해수관음상 풍경)

by 휴식같은 친구 2024.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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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설경] 낙산사 입장료, 주차장(의상대, 홍련암, 해수관음상 풍경)

 

 

양양 낙산사는 양양군 강현면 오봉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입니다.

관동팔경 중 하나이며, 겸재 정선의 화폭으로도 남긴 양양의 명승지입니다.

 

2005년 식목일에 강풍을 타고 넘어온 화재로 낙산사 대부분이 전소되는 안타까운 양양 산불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산의 나무나 낙산사 모두 어느 정도 복원되어 예전의 모습을 조금은 되찾은 것 같습니다.

 

낙산사를 덮친 산불이 지나간 뒤 2년 후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에 참으로 오랜만에 낙산사를 찾았습니다.

이번 양양과 속초 방문은 갑작스럽에 일이 생겨 찾게 되었는데, 이튿날 시간이 되어 낙산사와 속초 등을 잠시 여행한 것입니다.

 

눈이 내린 아름다운 낙산사의 설경과 입장료, 주차장 정보 그리고 낙산사에 있는 의상대와 홍련암, 해수관음상 등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낙산사 후문을 통해 들어갔습니다.

낙산사 홍예문이 정문이고, 낙산비치호텔이 있는 해안가 쪽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후문입니다.

 

오봉산은 낙산이라고도 하며 대한불교 조계종 3교구 본사인 설악산 신흥사의 말사입니다.

낙산사는 해변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를 갖춘 사찰로 강화도 보문사와 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하나입니다.

 

 

낙산사는 671년(신라 문무왕 11)에 의상대사가 창건했고, 858년(헌안왕 2) 범일이 중창하며 몇 차례 다시 세웠으나 6.25 전쟁으로 소실됐으며, 이마저도 2005년 양양 산불로 모두 소실되는 아픔이 있는 곳이 돼버렸습니다.

당시 보물 제479호로 지정되어 있던 낙산사 동종 역시 화마에 녹아버렸습니다.

 

낙산이란 말은 옛날 의상법사가 처음 당나라에서 돌아와 대비진신이 해변의 어느 굴속에 산다는 말을 듣고 이곳을 낙산이라 불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개 서역에 관세음보살이 있는 보타락가산이 있기 때문인데, 여기에서 낙산 지명이 유래한 것이라고 하네요.

 

낙산사 관람안내

 

관람시간 동절기 06:00~17:30, 하절기 06:00~19:30

휴무일 없음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승용차 기준 1회 4,000원

 

 

예전에 낙산사는 입장료를 받았는데, 지난 2023년 5월부터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무료관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주차장 주차요금은 1시간 남짓 관람하지만 일괄적으로 4,000원을 받는 건 너무 비싸네요.

시간당 요금을 받던지, 요금을 내릴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낙산사의 창건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낙산사 창건 전, 당나라 유학을 중단하고 신라로 돌아온 의상대사는 걱정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당나라의 침입을 예감하고 있었고, 삼국통일에 반감을 품은 귀족의 반란 징후가 곳곳에 나타났으며, 문무왕은 불안해하고 있던 시절, 의상대사는 강원도 양양에 관음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관음보살은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는 보살이기에 의상대사는 바로 양양으로 향했고 홍련암 아래 관음굴에서 21일 동안 기도한 그는 마침내 관음보살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관음보살은 대나무가 쌍으로 돋아날 것이니, 그곳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하리라고 전했는데, 대나무가 돋아난 곳에 의상대사는 원통보전을 세웠습니다.

 

낙산사 전각 중 원통보전과 홍련암을 대표적 전각으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낙산사 경내에는 원통보전 앞에 있는 칠층석탑(보물),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진신사리를 봉안한 해수관음공중사리탑(보물), 홍예문, 홍예문 담장, 의상대, 홍련암(이하 강원도 문화재) 등의 문화재가 있고요.

 

동해를 바라보는 해수관세음보살상, 7관음과 1500관음을 모신 보타전, 의상대와 홍련암 등이 있습니다.

 

낙산사 입구에 있는 무료찻집

이곳뿐만 아니라 누정이 있는 곳에서는 무료 커피와 차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낙산사 의상기념관과 다래헌

 

의상기념관은 공사 중...

의상대사와 낙산사에 얽힌 이야기를 다양한 전시품으로 접할 수 있고, 2005년 낙산사 화재 관련 자료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다래헌은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낙산사와 다래헌 운영자 간의 분쟁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건 일반인들에게 보이는 이런 분쟁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빨리 해결되어 이런 입간판이나 주변의 어지러운 현수막이 철거되기를 바랍니다.

 

눈 내리는 낙산사

다래헌에서 우선 의상대와 홍련암이 있는 우측으로 갔습니다.

 

의상암과 홍련암 일대는 명승 2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낙산사 의상대

 

의상대는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해안 언덕에 있는 정자인데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낙산사를 지은 의상대사를 기념하기 위해 1925년에 지은 정자인데요.

만해 한용운이 낙산사에서 머물면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 복원한 것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6각으로 만들어진 이 아담한 정자는 주위 풍경이 매우 아름다워 낙산사를 설명할 때에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시인 묵객들이 풍경이 좋아 즐겨 찾는 곳이었습니다.

 

의상대 뒤에 있는 소나무가 고고하고 멋진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모습이 예술입니다.

 

6각으로 만들어진 의상대 모습

 

의상대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풍경

바람이 제법 불어 파도가 무척 높게 일고 있습니다.

 

의상대에서 바라본 홍련암

 

낙산사 앞 동해바다

 

홍련암으로 가다 보니 노란 무언가가 보이던데, 가까이 가보니 노란 거품이 가득합니다.

 

바다거품은 파도가 세게 칠 때 바닷속 유기물질들이 충돌하면서 만들어지곤 하는데요.

유기물질은 해조류의 분비물이나 해양 생물의 분비물 등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오염이 없다면 하얀 거품이 생기는데, 이곳의 노란 거품은 왠지 오염된 유기물로 만들어진 것 같아 안타깝네요.

 

바위 안쪽으로 거품이 만들어져 있고, 파도는 쉴 새 없이 치고 있습니다.

 

낙산사 연하당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보물)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는 낙산사 내력을 기록한 비문을 새긴 비석인데요.

조선 숙종 19년(1693)에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이현석이 글을 짓고 이듬해에 세웠습니다.

 

 

낙산사가 관동지방의 아름다운 경치를 가지고 있고, 신라시대에 의상대사 등이 관세음보살을 직접 만난 관음도량이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1619년에 관음상을 봉안한 전각을 중건했는데, 1683년 관음상의 색이 바래서 새로 금칠을 했더니 하늘에서 영롱한 사리 1과가 떨어져 이를 봉안한 탑을 만들어 세웠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조금 전 다녀왔던 의상대 모습

 

 

심하게 치는 파도 모습

 

바로 앞에 홍련암이 있습니다.

 

홍련암은 낙산사 북동쪽 바닷가에 자리한 낙산사 부속 암자로 신라 문무왕 11년(671)에 의상대사가 낙산사와 함께 지은 건물입니다.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어 관음굴이라고도 합니다.

 

의상대사는 이곳 석굴에서 기도하다가 관세음보살을 보았고, 원통보전을 세우는 등 낙산사를 짓게 된 것입니다.

 

의상대와 홍련암의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되돌아와 낙산사로 이동했습니다.

 

관음지와 보타락, 보타전이 순서대로 있는 곳입니다.

 

관음지에 있는 관음상

 

낙산사 지장전

 

지장전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가르치고 도와주는 지장보살을 모신 건물로 2012년에 신축한 전각입니다.

 6.25 전쟁에 전사(한국군, 북한군, 중국군, 연합군)한 영령과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 돌아가신 어부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선망부모의 재를 올리는 법당이라고 합니다.

 

낙산사 보타전

관음성지임을 상징하는 전각이라고 합니다.

 

낙산사는 1300여년 전 신라의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낙산 동쪽 바닷가 굴속에 있다는 말을 듣고 친견하기 위해서 찾아갔다가 창건한 사찰입니다.

 

보타전 앞 칠층 석탑

 

낙산사 산신각

 

보타전 옆으로 이동하면 원통보전과 해수관음상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제법 많은 눈이 내려 미끄럽네요.

 

전방에 보이는 전각은 낙산사 홍예문입니다.

 

조선 세조 13년(1467)에 왕이 낙산사에 행차하여 절 입구에 세운 무지개 모양의 돌문입니다.

당시 강원도는 26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세조의 뜻에 따라 각 고을의 수령이 석재를 하나씩 내어 26개의 화강석으로 홍예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홍예문 위에는 1963년 세운 누각이 있는데, 앞면 3칸·옆면 1칸의 문루입니다.

이 문루는 주변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여 홍예석 주위에 자연석을 쌓고 세워 특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05년 산불로 소실되어 2007년에 복원된 것입니다.

 

홍예문에서 원통보전으로 이어지는 길 그리고 사천왕문입니다.

 

빈일루

동해를 바라보면 해를 맞이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낙산사 범종각

범종각 역시 양양산불로 보물이었던 동종이 소실되고 재현한 것입니다.

 

중앙에 있는 전각이 원통보전입니다.

 

무산미술관

낙산사 전각들에 있는 현판들은 모두 한자인데 한글로 적혀 있어 색다르네요.

 

조선 세조 때 다시 세운 낙산사 칠층 석탑(보물)과 원통보전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 및 홍예문 등이 남아 있었으나 2005년 큰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은 소실되어 다시 지은 것입니다.

 

원통보전 내부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는데요.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량을 복구한 후 이곳으로부터 약 8km 떨어진 설악산 관모봉 영혈사에서 옮겨 온 것이라고 합니다.

제작 시기는 12세기 초로 추측되는데, 고려시대 문화의 극성기 양식을 나타낸 매우 아름다운 관음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칠층석탑은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세조 13년(1467)에 이르러 현재의 7층으로 조성한 탑이라고 합니다

이때 수정으로 만든 염주와 여의주를 탑 속에 봉안하였다 하네요.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음으로써 천여 년간 국교로 자리 잡고 있었던 불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와 함께 불교와 관련된 조형 미술의 분야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조선 전기에는 불교미술 분야에서 조성 양식이나 수법이 고려적인 작품이 다소 조성되었습니다.

낙산사 7층석탑도 고려시대의 여운이 남아 있는 석탑 중 하나입니다.

 

원통보전과 7층 석탑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

기와를 놓고 황토를 겹겹이 쌓은 담장이 이채롭습니다.

 

원통보전 담장은 조선시대 세조가 낙산사를 중창할 때 쌓은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기와와 흙을 차례로 쌓고 곳곳에 원형 단면의 화강암을 넣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사찰의 대표적인 담장으로 평가받고 있고, 담장 주위엔 창건 설화에 등장하는 대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 해수관음상으로 이동합니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위엄있게 서 있네요.

 

원통보전 담장을 따라 설경을 보면서 이동합니다.

 

아래쪽에는 낙산사 보타전 일원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눈 내린 낙산사 산책로 너무 예쁘네요.

 

멀리 낙산사 해수관음상이 보입니다.

 

범종이 놓여 있네요.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관음상으로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이라서 세운 것으로 지금은 바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있어 낙산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해수관음상은 높이 15m, 둘레 3m 정도의 거대 불상으로, 불상 조각의 일인자인 권정학 씨가 조각했습니다.

 

 크기만큼 공사 기간도 상당한데, 1971년부터 다듬기 시작해 6년 6개월 만에 완성했는데요.

바다를 등지고 불상을 바라보면 관음보살이 백두대간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모습입니다.

 

해수관음상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낙산사가 한눈에 들어오네요.

겨울 눈 내리는 낙산사 설경이 장관입니다.

 

다만, 지난 산불로 나무들이 작고 울창하지 않아 사찰로서의 옛날 고즈넉함은 훨씬 덜한 느낌이라 아쉽습니다.

 

전쟁과 화마로 전소되었던 낙산사

사진에서 보듯 산이라고 하기엔 아직까지 민둥산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산불로 산림을 태워버리면 복원하는데 최소 50년이나 걸린다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화재나 불행으로 낙산사가 피해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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