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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의 세 번째 별장, 바오다이 황제 제3궁

by 휴식같은 친구 2026.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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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청남대라는 대통령 별장이 있듯이 베트남 달랏에도 황제의 별장이 있습니다.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가 응우옌 왕조이고, 그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가 바오다이인데, 그 바오다이 황제 제3궁입니다.

 

실제 바오다이 황제는 시원한 날씨의 달랏을 무척 좋아했고, 황제로 있으면서 3개의 별장을 가졌다고 합니다.

1, 2궁은 개방하지 않고 있고, 3번째 별장을 개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오다이 황제의 세 번째 별장인 제3궁은 바오다이 황제가 가족들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여름 별장으로, 당시의 화려한 생활상과 프랑스식 건축미를 엿볼 수 있는 곳인데요.

황제의 생활공간과 정원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베트남 역사 체험 여행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 응웬왕조의 마지막황제의 세 번째 별장, 바오다이 황제 제3궁 입구

 

 

 바오다이 황제 제3궁 관람안내

 

관람시간 07:00~17:30

휴무일 연중무휴

입장료(관람료) 성인 60,000동(3,300원), 아동 30,000동

 

바오다이 황제 제3궁은 프랑스 건축가와 베트남 건축가가 공동 설계한 2층 규모의 현대적 양식 건물입니다.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 가족이 실제로 거주했던 공간이며, 당시 사용하던 가구와 소품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시대상을 느끼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먼저 베트남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베트남은 기원전부터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국가의 기틀을 다졌으나, 오랜 기간 중국 왕조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약 1,000년 동안 중국(한, 당 등)의 지배를 받으며 한자와 유교 문화가 유입되었고, 끊임없이 독립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938년 응오꾸옌이 박당강 전투에서 승리하며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며 1000년의 식민생활을 청산했습니다.
리(Ly) 왕조, 쩐(Tran) 왕조 등을 거치며 독자적인 황제 국가로 성장했고, 북부에 치우쳤던 영토를 남쪽으로 확장하며 참파 왕국 등을 정복하고 현재의 베트남 영토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은 수 많은 왕조가 반복하며 들어섰고, 수십년~200년 정도 유지하며 우리나라처럼 500년 이상된 왕조는 없었다고 합니다.

1802년 수립된 응우옌 왕조(1802~1945)는 베트남의 마지막 봉건 왕조였고, 19세기 중반부터 프랑스의 침략을 받아 식민 지배를 받았습니다.


1945년 호찌민이 독립을 선언했으나, 이후 프랑스(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미국(베트남 전쟁)과 연이어 전쟁을 치렀습니다.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북베트남에 의해 마침내 사회주의 남북통일이 이루어졌고, 전쟁 이후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Doi Moi, 쇄신)' 정책을 도입하여 시장 경제를 받아들이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마지막 봉건 왕조인 응우옌 왕조(Nguyễn, 1802~1945년)는 베트남의 영토 윤곽과 국가적 기틀을 완성한 시기였습니다.


1802년 자롱 황제가 프랑스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베트남을 통일하고 중부의 후에(Huế)를 수도로 하여 개국했습니다.
이때 북쪽 끝에서 남쪽 끝(메콩 델타)까지, 현재 베트남의 국경선과 거의 일치하는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프랑스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1883년 아르망 조약을 통해 프랑스의 보호령(식민지)이 되었습니다.
왕조는 유지되었으나 실권은 프랑스 총독부가 행사했으며, 황제들은 상징적인 존재로 전락한 것입니다.

 

바오다이 황제(1913~1955, 재위 1925~1945) 응우옌 왕조의 제13대 황제이자, 베트남 역사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그의 이름인 '바오다이'는 '위대함을 유지한다'는 뜻의 연호라고 합니다.

9세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서구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부친인 카이딘 황제가 서거하자 12세에 황제 자리를 물려받았고 실제 통치는 유학을 마친 1932년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은 거의 없었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프랑스를 몰아내자 잠시 '베트남 제국'의 독립을 선언했으나, 곧이어 일어난 8월 혁명으로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민에 권력을 양도하고 자진 퇴위했습니다. 
이로써 143년간 이어진 응우옌 왕조는 막을 내립니다.

이후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남베트남 지역의 '베트남국' 수장으로 복귀했으나, 1955년 고딘지엠의 국민투표에 의해 실각하여 다시 프랑스로 망명했습니다.

그는 정사보다는 사냥, 골프, 자동차, 도박 등 호화로운 취미 생활을 즐겼던 것으로 유명한데요.
특히 달랏의 시원한 기후를 좋아해 이곳에 3개의 별장(Dinh I, II, III)을 짓고 휴양을 즐겼다고 합니다.
3개의 별장 중 바오다이 황제 제3궁만 개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오다이 황제 별장 앞마당

 

바오다이 황제의 별장을 얘기하면서 그의 첫 번째 부인인 남프엉 황후(Nam Phương)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로맨틱하면서도 시대의 비극을 담고 있습니다.

 

둘은 1932년 달랏의 한 파티에서 처음 만났고 프랑스 유학파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두 사람은 금세 사랑에 빠졌습니다.
당시 왕실은 불교 집안이었으나 남프엉은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바오다이는 왕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밀어붙였고, 왕조 역사상 최초로 결혼식 당일 아내에게 '황후' 칭호를 부여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남프엉 황후의 결혼 조건이었다고 함)

 

남프엉 황후는 베트남 여성 최초로 서구적 패션과 베트남 전통 의상을 조화롭게 소화하며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그녀는 바오다이 황제의 외교 활동을 돕고, 사회 복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황실의 품격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바오다이는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수백 년간 이어온 후궁 제도를 폐지하고 일부일처제를 약속했는데요.
격동의 정치 상황 속에서 바오다이는 점차 방탕한 생활에 빠졌고, 다른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며 약속을 저버렸다고 합니다.


결국 남프엉 황후는 자녀들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가 조용한 삶을 살다가 1963년 외롭게 생을 마감했고, 바오다이 역시 실각 후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오다이 황제 제3궁 모습

1933년 ~ 1938년 사이에 지어진 별장입니다.

 

입장을 위해서는 신발에 비치된 덧신을 신고 관람을 해야 합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로비가 반겨줍니다.

 

입구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황제의 집무실이 있습니다.

바오다이 황제가 국사를 돌보던 곳으로  책상 위에는 전화기, 인장 등이 놓여 있고 벽면에는 황실의 사진들이 걸려 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바오다이 황제와 남프엉 황후

황제와 황후 모두 잘 생기고 키도 훤칠해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황제와 황후의 사진들

 

별장에서 쓰던 고급 그릇들

 

점견실

외교 사절이나 귀빈들을 만나던 장소인 듯합니다.

 

곳곳에 공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연회장

외교 사절이나 귀빈들을 초대해 연회를 열던 곳입니다.

 

리셉션 룸

 

귀빈들이 황제를 알현하기 전 대기하거나 가벼운 담소를 나누던 방으로 보이는데요.

정확하지 않는 설명일 수 있으니 대충 참고욕으로만 보시기 바랍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황제의 침실들이 있습니다.

침실이 4개나 있는데 어떤 용도였을까요?

 

이곳은 별장 뒤쪽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방으로 남프엉 황후의 방이라고 합니다.

황제의 방 옆에 있고, 지성미 넘쳤던 황후의 취향이 반영된 우아하고 정갈한 인테리어가 특징입니다.

 

2층 응접실

 

2층에서 바라본 바오다이 황제 제3궁의 후면 야외 정원



 

정원이 예쁘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또 다른 침실

 

테라스

잘 가꾸어진 외부 정원을 내려다보는 명당입니다.

 

가족 거실로 보입니다.

 

2층 복도 모습

별장 건물이지만 제법 규모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청남대 건물의 룸보다 2배 이상은 되는 듯.

 

관람 코스를 따라 1층으로 내려오니 주방이 있습니다.

규모가 상당해서 대연회를 준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당시 사용하던 대형 오븐, 조리 기구, 식재료 보관함 등이 있어 황실의 식사 준비 과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 자연스럽게 출구로 연결됩니다.

 

바오다이 황제 제3궁 별장 뒷면 모습

 

정원이 예쁘게 가꾸어져 있습니다.

 

정원 뒤쪽으로 늘씬한 소나무 군락지가 있는 모습

 

 

화려하게 살았지만 힘이 전혀 없었던 황제, 조건을 걸어 황후가 되었지만 남편의 외도로 쓸쓸한 말년을 맞이한 황후.
바오다이 제3궁을 나오며 뒤돌아본 노란 건물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 안을 채웠던 황제 부부의 역사는 달랏의 안개만큼이나 시리고 뿌옇게 느껴졌습니다. 권력은 없었으나 화려해야 했고, 사랑은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못했던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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