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역사과학을 공부하는 신라역사과학관
경주여행 3일차 아침,
전날 석굴암에 가서 내부사진을 찍지 못하게 해서 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도 있고, 석굴암에 많은 과학적 원리가 들어가 있다는 생각에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알수 없을까 해서 찾은 곳이 바로 신라역사과학관 이라고 하더군요.
딸 아이에게 좀 더 석굴암의 과학적원리를 알려주고자 오전 10시 정도 도착해서 마침 시작된 설명회가 있어 따라 다니며 공부를 했습니다.
신라역사과학관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민족과학의 뿌리를 알리고 심어주는 교육현장을 만들려고 1988년에 문을 연 사설박물관입니다.
석굴암과 첨성대, 상원사 범종의 과학으로 떠나볼까요?
신라역사과학관은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가는 보불로 경주민속공예촌 내에 위치합니다.
석굴암의 비밀을 설명하는 전시공간 성격이 강해서 제2석굴암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유물의 일부만 남아있을지라도 만든 원리를 토대로 실험과 관찰을 거듭해 그원형을 복원하는데 중점을 두고 운영하는 곳이더군요.
신라역사과학관 입장료는 성인이 5,000원, 추중고 학생/노인이 3,500원입니다.
사설박물관이라 볼거리에 비해 입장료는 비쌉니다.ㅠㅠ
신라역사과학관 관람시간은 11~2월에는 09:00~17:30, 하절기에는 09:00~18:30 입니다.
신라역사과학관 휴무일(휴관일)을 별도로 공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동절기엔 목요일 휴관, 하절기엔 월요일이라는 말도 있고, 연중무휴로 운영한다고도 합니다.
방문 전 자세한 휴무일은 미리 전화로 문의(054-745-4998)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주차장은 입구에 무료로 운영합니다.
1층 입구로 들어서면 첨성대 등이 보이는데 나중에 설명해 드리기로 하고, 설명이 있는 지하 제2석굴암으로 내려갔습니다.
1939년 일본인 요네다 묘오지가 실측한 석굴암의 모형입니다.
이곳의 석굴암은 실제 석굴암과 1:5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합니다.
실제 석굴암 관람기
세계 유일의 인공석굴, 경주 석굴암(석불사)의 위대한 건축
조선시대 말기의 석굴암 모습들
석굴암의 연호대좌와 굴의 밑바닥
석굴암 부처님이 앉아 있는 8각 연화대좌석은 마치 물 속에서 피어오른 연꽃처럼 복련과 양련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석굴암의 구조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본존불이 계시는 주실과, 통로인 비도, 참배자가 참배를 드리는 전실
그런데 이들의 형태를 보면 주실은 원형이며 전실은 방형으로 이것은 당시 신라인들의 사상인 천원지방(하늘은 둥글고 땅은 방형이다) 의 사상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석굴암으로 향한 종착지에 닿으면 생명수처럼 맑고 깨끗한 샘, 감로수 하나가 우리를 반깁니다.
1913년도에 일본인들은 석굴암을 해체하고 다시 복원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 때 굴의 후실 중심부에 자리잡은 11면관음보살 바로 뒷편의 암반으로 부터 용출하는 샘을 두 곳에서 발견했습니다.
이 샘이 경덕왕대의 김대성이 석굴암을 창건 할 때부터 있어 왔다면 이들은 물이 용출하는 이 암반수 위에 석굴을 세우고도 석굴 동서로 돌 아나가는 배수구를 만들지 않은 이유는 물이 용출하는 5척 지하에 배수구를 만들지 않았다면 필연적으로 물은 굴원 밑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고합니다.
따라서 물은 암반을 타고 흘러 현재의 감로수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는데요.
이것은 당시 신라인의 지혜를 엿볼수 있는 곳입니다.
즉 이곳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은 여름철이 되면 항상 동해의 해풍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되면 여름철이면 동해의 고온 다습한 공기가 석굴 내부로 들어오게 되므로 내부의 차가운 벽면과 만나게 되면 물방울을 맺게 되죠.
그렇게 되면 내부의 많은 조상들은 심한 풍화작용을 이르키게 되고, 당시 신라인들은 이 곳 석굴암 바닥으로 항상 영상 9도에서 13도가 되는 차가운 샘물이 흐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부로 들어온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더 차가운 바닥에 습기를 빼앗겨 버리고 내부 벽면은 항상 건조할 수가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장치로서 당시 신라인들은 약 1200년 동안을 습기로부터 무사히 석굴암을 보존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감로수는 대종천에 합류되고, 대종천은 마침내 동해에 이릅니다.
그곳에는 감은사와 이견대, 유명한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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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환기
석굴암의 문제점
문제점 1. 1913년경의 일본인들에 의한 수리공사 당시 수리공사를 하던 일본인들은 석굴암을 이루고 있던 석재들을 완전해체를 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류들을 남기게 됩니다.
이중 가장 큰 오류로 여겨지는 것이 돔외부를 보강하고 있는 콘크리트에 있는데요.
내부의 고온다습한 공기의 흐름을 차단하게 되었으며 이로인해 지금의 이슬맺힘 현상(결로현상)을 유발시켰다고 합니다.
문제점 2. 1917년, 1924년경의 수리공사 이같은 결로현상으로 인해 내부벽면에 많은 청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를 제거할 목적으로 증기세척을 가하게 됩니다.
이는 내부 석재의 수명에 치명타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점 3. 1962년경 문화재관리국은 석굴암 전실에 목조로 된 가옥을 만들게 되고, 1913년에 설치한 콘크리트 돔위에 또다시 콘크리트 돔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1966년경에는 내부 결로현상을 막기위해 기계장치들을 설치를 하게 되나 이러한 기계당치로 인해 내부의 습기란 문제는 다소간 해결을 하였으나 많은 기계장치의 소음과 진동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1970년대 중반경에는 결국 석굴암의 과학적 보존을 위해 전실 앞부분에 유리로 차단막을 설치함으로서 일반 관람객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석굴암 부처님이 있는 통로에는 동서남북을 지키는 사천왕이 자리하고 있고, 원형의 뒷방으로 방 벽면에 여러 불상들이 좌우대칭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석굴암의 지붕은 힘의 분배를 위해 툭 튀어나오는 구조물로 만들어졌디고 합니다.
오랜 세월을 견딘 과학적 원리라고 하네요.
석굴암에는 광창이 존재했을까?
인원이 많아 설명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설명 자체가 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설명을 들으니 석굴암에 대한 과학적 원리와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내용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하네요.
석굴암 천장은 둥근 궁륭 천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곡선을 지닌 네모꼴의 판석과 그 사이에 주먹돌을 넣어서 견고하게 짜 올라갔습니다.
정상에 이르러서는 이 천장 돔 구조의 마감 돌로서 크고 둥근 돌 한 장을 얹어 석굴을 완성함과 동시에, 본존불상의 천개석으로 삼았습니다.
그 둘레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여 한 송이의 큰 연꽃 같은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 천개석은 현재 세쪽으로 깨어져 있습니다.
마지막 석굴공사의 비상한 어려움과 그 해결을 위하여 김대성이 천신에게 간곡한 기도를 올렸다는 설화가 다음과 같이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다네요.
장차 석불을 조각하려 함에 있어 큰 돌 한 장을 다듬어 감실의 뚜껑을 삼고자 하였다.
갑자기 이 돌이 셋으로 갈라지는지라 대성이 분히 여겨 잠시 잠에 들었다.
밤중에 천신 이 하늘에서 내려와 마무리하고 돌아가니, 대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령으로 뛰어 올라 향을 피워서 천신에게 공양하였다.
이같은 일이 있으므로 그 땅을 향령이라고 하였다.
제2석굴암을 관람하고 2층으로 올라왔습니다.
오대산 상원사 범종은 성덕대왕 신종(에밀레 종) 보다도 45년이나 먼저 만들어진 한국 유기명 범종 가운데 가장 오랜 금속문 기록을 지닌 한국 범종의 조형입니다.
처음에 어떤 목적으로 주조되어 어느 절에 보관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안동의 《영가지》에 의하면 안동 읍성의 누문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조선조 예종1) 국명에 의하여 죽령을 넘겨 현 상원사 위치로 옮겼다고 합니다.
신라역사과학관에는 실물크기의 복원제작을 성공시켜 전시하고 있고, 해설사가 직접 타종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더군요.
타종 후 1초 이내에 사라지는 타음과 10초 전후까지 이어지는 진동(몸체 떨림)에 이어 3분까지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은은한 맥놀이(beat)현상을 되살렸다고 하네요.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모습
경주 역사유적지구, 경주 대릉원(천마총, 황남대총, 미추왕릉) 투어
이외에도 2층에는 배모양토기, 신라 무역선, 신라금관, 백제금관, 해인사 장경판, 직지짐제요철,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혼천의, 월인천강지곡, 일성정시의, 양부일구, 측우기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옥상에는 감은사지, 첨성대 상부 정자석, 이견대, 일출탑, 문무대왕수중릉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층 첨성대 모형
첨성대도 다양한 과학적원리가 숨어있는 건축물입니다.
첨성대 구조는 기단부(사각형 상하 2단), 원주부(27단), 정자형두부(상하 2단의 정자형 구조)의 3부분으로 나뉩니다.
기단부의 총 높이는 79cm, 석재수는 20개,
방향은 남변이 정남에서 동쪽으로 19도 만큼 돌아간 방향을 하고 있습니다.
원주부는 높이가 8.05m
1단에서 12단까지는 단의 높이가 약 30cm, 외벽의 석재수에 따라 각각 15, 16, 17, 18개, 내부는 초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중앙의 개구는 13~15단이며, 1변이 약 95cm, 개구는 정남에서 동쪽으로 16도 돌아간 방향을 하고 있습니다.
12단까지 흙으로 채워져 있고, 13단부터 비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개구 하단 평판석에는 사다리를 걸쳤다고 생각되는 홈이 개구 양단에 파져 있습니다.
19~20단은 각 남북, 동서방향으로 2개씩 장대석이 걸쳐있어 정자를 이루며 장대석의 끝은 외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25~26단도 19~20단과 동일한 형태입니다.
마지막 27단의 내벽동반에 평판석이 걸쳐있어서 서반이 열려있고, 평판석은 외벽석과 6cm 두께의 차를 보입니다.
서반부 벽석 3개의 내벽에는 홈이파져 있어서 종반부 평판석과 목재평판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13단에서 27간은 속이 비어서 사다리 2개를 중간에 장대석에 걸쳐 오르내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정자형 두부는 장대석 4개씩으로 정자형으로 서로 물려 있습니다.
방향은 기단의 남방 방향에서 8도 정도 서쪽으로 돌아있습니다.
이것은 최근 80년 내에 2번 수리했을 때의 잘못으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반부는 개폐가 가능해서 앉거나 서거나 드러누워서 관측하는데 충분하다고 합니다.
신라시대 4급 보상식 물시계
그 외에도 1층에는 신라왕경도, 혼상(천구의), 신라시대 해시계, 남산유적 복원도, 황남대총 출토유물, 선덕여왕상 등이 있습니다.
신라역사과학관은 작지만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 세종시대까지의 과학기술사를 복원하고 제작원리를 모형으로 재해석하는 전통과학관입니다.
좀 더 신라의 유물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원한다면 입장료가 비싸지만 방문해 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개인이 국가유물에 대한 관심으로 만든 박물관이라 더 의미가 있는 곳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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